개구리가 뒤흔든 차트와 캔버스 ― PEPE 밈코인, 투기와 예술의 경계
PEPE는 2023년 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올라온 초경량 토큰이었다. 기술 서류도, 로드맵도 없었다. 소개 문구는 간단했다. “이건 밈이다. 밈이면 충분하다.” 서사는 가볍지만 파급력은 무거웠다. 촌스러운 픽셀 개구리를 아바타 삼아 커뮤니티가 한데 몰리고, DEX 유동성이 붙고, 중앙화 거래소들이 예상보다 서둘러 상장을 열어 주자 가격 곡선은 튕겨 오르듯 솟구쳤다. 게임 머니로 던진 사람들이 하루 늦게 로그인했을 때 이미 백만장자가 된 사례가 속출했고, 차트는 녹색 양봉으로 도배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PEPE는 시총 수십억 달러의 밈코인 ‘빅3’ 한 자리를 꿰차면서도, 위태로운 스릴을 놓치지 않았다. 빈번한 소각 이벤트와 극단적 레버리지 선물이 거래량을 밀어 올렸고, 고점과 저점은 롤러코스터의 양 끝처럼 날카로웠다.
그런데 이 뜨거운 코인 뒤에는 한때 ‘인터넷의 실패한 유머’로 치부되던 그림 한 장이 있다. 2005년 매트 퓨어가 4컷 코믹스에 그린 녹색 개구리, 페페 더 프로그. ‘Feels good, man’이라는 대사를 달고 단순 복사 붙여넣기 밈으로 떠돌다, 무분별한 변형 끝에 한동안 극우·혐오의 상징으로까지 낙인찍혔다가 다시 “아무 의미 없는 낄낄거림”으로 회귀했다. 예술사적으로 보면 페페는 안티 히어로이자 현대 소비문화의 적나라한 거울이다. 주인 없는 이미지는 무수한 인터넷 사용자에게 탈맥락·재맥락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처럼 ‘대량 복제된 팝 아이콘’이 된다. PEPE 밈코인은 그 이미지를 화폐 단위로 번역해 버렸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번역 행위가 일종의 참여형 퍼포먼스 작품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토큰을 사는 행위 자체가 “나는 이 밈에 웃고, 울고, 베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하는 퍼포먼스다. 가격이 오르는 동안 커뮤니티는 경쟁적으로 페페 이미지를 변주하며 2차·3차 크리에이티브를 쏟아낸다. 트위터 배너나 NFT 컬렉션은 물론, 실제 캔버스 회화나 레진 피규어까지 제작된다. 작가 없는 원본이 끝없이 복제되고, 가치가 발생하는 지점이 시세 차트라는 점에서 PEPE는 워홀의 ‘캠벨 수프’와 두 손을 맞잡는다. 브랜드 로고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던 1960년대 팝아트가 있다면, 2020년대의 밈코인은 화폐와 밈을 결합해 예술·투기·놀이의 경계를 희석한다.
“가격은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이 PEPE 앞에서 재점화된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올렸을 때 충격은 ‘무가치(urinal)’가 ‘고가치(artwork)’로 순간 이동한다는 데 있었다. PEPE는 반대로, 고가치가 하루 만에 무가치로 붕괴할 수도 있는 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거래소 호가창이 곧 미술관 벽이고, 지갑 잔고의 초록·빨강 캔들스틱은 생생한 컬러필드 페인팅이 된다. 실제로 일부 크립토 아트 갤러리는 PEPE 가격 변동 데이터를 실시간 프로젝션으로 쏘아 올리고, 관객은 시세 그래프가 튀길 때마다 함성을 지른다. 정적인 유화나 조각에 익숙했던 전통 전시장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인터랙션이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PEPE의 기반은 ‘웃음이 끊어지면 모든 게 사라진다’는 불안정한 원칙 위에 있다. 실체 없는 밈이 화폐로 둔갑한 만큼, 내재 가치에 대한 질문은 끝내 미해결이다. 이것을 예술적 해프닝으로 치켜세울 수도, 집단 투기로 냉소적으로 잘라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참여자가 이 구조 자체를 이미 알고서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밈코인은 투기장에서 스스로를 연출하고, 관객은 동시에 투자자이자 배우가 되며, 그 행위가 하나의 거대하고 시시각각 변동하는 퍼포먼스로 굳어지는 셈이다.
결국 PEPE 밈코인은 두 겹의 레이어로 읽힌다. 하나는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출렁이는 고위험 자산으로서의 ‘차트’. 다른 하나는 팝아트 이후 확장된 미술사가 끝내 포섭하지 못했던 인터넷 밈 문화를 자본의 언어로 변주한 ‘이미지의 실험실’. 두 레이어가 겹칠 때, 웃음은 수익이 되고 수익은 다시 밈이 된다. 이것이 페페가 차트와 캔버스, 투기와 예술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유다. 웃음이 멈춘 순간 끝장이라는 운명도 매혹의 일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끝이 올 때까지, 녹색 개구리가 튀어 오르는 그래프를 또 한 번 새로 고침하며 바라보게 된다.
마케롱은 마케팅을 연구하고 개발합니다.
크몽을 통해 수 많은 상품을 만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