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똥, 예술의 가치? ― 피에로 만초니 (Piero Manzoni)의 Merda d’artista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
1. “내용물이 무엇이든, 예술은 캔 밖에 있다”
1961년 5월,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튜디오에서 스물여섯 살의 피에로 만초니는 30 g들이 작은 철제 캔 90개에 라벨을 붙였다. 라벨에는 단 세 줄이 새겨져 있었다.
“Artist’s Shit
Contents 30 gr
Net Weight 30 gr
Produced and tinned in May 1961”
판매가는 당시 금 시세와 비슷한 무게 당 가격으로 책정됐다. 만초니는 직설적으로 묻는다. “당신은 진짜로 ‘예술의 본질’을 원하나, 아니면 ‘예술가라는 브랜드’의 잔향을 소비하나?”
2. 왜 하필 ‘똥’이었을까?
몸 = 공장 | “작가는 작품을 생산하는 공장일 뿐” – 앙리 루소의 DIY적 순수성을 뒤집어, 자기 신체를 가장 원초적 생산 설비로 선언 | 예술 행위의 낭만적 신화를 해체 |
상품 Fetish | 완벽히 밀봉된 캔, 에디션 넘버, 수출용 영어·프랑스어 라벨 | 1960년대 소비사회·포장 문화에 대한 거울 |
뒤샹으로의 역주행 | 뒤샹이 변기를 ‘예술화’했다면, 만초니는 ‘예술가 자신’을 물질화 | 예술이념의 밑변을 부정(不定) 값으로 치환 |
3. 캔 안에는 진짜 배설물이 있을까?
- 정설: 만초니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 ‘작가의 배설물’을 소분.
- 비공식 설: 일부 보존 연구는 석고·염분·기름 혼합물 가능성을 제기.
- 만초니의 답: “열어 보는 순간, 예술은 사라진다.”
핵심은 ‘내용’이 아닌 ‘믿음’이다.
예술 시장은 신뢰와 희소성이 가치의 단가를 만든다는 사실을, 만초니는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시연했다.
4. 예술 시장에서 ‘똥’의 시세는?
1992 | 약 10,000 달러 | 첫 미국 경매 낙찰 |
2007 | 124,000 유로 | 소더비 런던 |
2021 | 275,000 유로 | 파리 앙쿼리옴 경매, 유럽 최고가 기록 |
가격 곡선은 비선형적이다. 내용물의 부패 위험(실제 2019년, 한 캔이 가스 팽창으로 파손)에도 불구하고 가치는 상승해 왔다. 이것은 미술품이 물질 + 내러티브 결합물임을 극단적으로 증명한다.
“예술은 어디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가?”
만초니는 1963년 29세로 요절했다. 그러나 90개의 캔은 **반세기 넘게 썩지 않는 ‘개념의 시체’**로 남았다. 그는 우리의 가치 체계—특히 예술과 돈, 신체와 이미지—를 통렬히 비꼬았다. 캔을 끓여도 예술이 나오진 않겠지만, 캔이 존재하는 순간, 예술의 경계는 조금 더 불편하게 흔들린다.
“나는 나의 똥을, 당신은 당신의 개념을 열어 보라.”
─ 피에로 만초니(가 남긴 행위의 함의)
“예술가의 똥” 앞에서 멈칫한 나 ― 피에로 만초니 Merda d’artista 장시간 감상기
Ⅰ. 낄낄거림과 경외심 사이의 첫 5초
밀라노의 갤러리 입구 한가운데, 손바닥만 한 녹슨 캔이 유리케이스 안에 놓여 있었다.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술가의 똥이라니, 농담도 참—”
그러나 눈길이 라벨 활자를 더듬는 순간, 낄낄거림은 묘한 경외심으로 뒤바뀌었다. ‘May 1961’이라는 타이포그래피가 낡은 서체로 반짝이고, 그 밑에 Produced and tinned…—제조업 표준 문구가 촌철살인처럼 박혀 있었다. 만초니가 진짜로 ‘생산 허가증’ 없는 사적 배설물을 산업 포장 규격으로 번역했다는 사실이 실감되자, 머리가 얼얼해졌다.
Ⅱ. 캔은 열리지 않는다, 미스터리는 스스로 팽창한다
유리케이스를 몇 바퀴 돌았다. 캔에 붙은 작은 기포 자국, 금속 산화가 만든 붉은 흔적, 넘버링 글자가 서로 조금씩 기울어 있는 각도… 구경꾼들이 남긴 김 서린 호흡 자국까지 모두 풍경으로 보였다. 하지만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한 것은 “도대체 안에 뭐가 있을까?”라는 보이지 않는 질문이었다.
발걸음을 돌려도 미스터리는 쫓아왔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도, 지하철 핸드레일을 잡을 때도, 머릿속에는 여전히 ‘캔’이 열려 있었다. “만약 석고 덩어리였다면?” “정말 30g의 대변이라면?” 이미 만초니가 설계한 게임 안에서 나는 패배한 관객—궁금증이 값어치를 만들어 내고, 나는 그 값어치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Ⅲ. 몸과 자본, 예술과 상품의 교차로
5m 옆 벽면에는 금 시세 그래프와 캔 경매가 곡선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1961년 최초 판매가는 당시 금 30g 상당액. 2021년에는 무려 27만 5천 유로. 대변과 금의 등가 교환이라는 아이러니가 냉정한 숫자로 시각화돼 있었다.
“예술은 배설되고, 배설은 황금이 된다.”
만초니는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를 ‘바디메이드(body-made)’로 돌변시켰다. 변기를 미적 오브제로 끌어올린 뒤샹을 거꾸로 밀어붙이며, 인간 몸은 그 자체로 **공장(Factory)**이며 마케팅 로고가 된다고 선언한다. 기묘하게도, 이 황당한 캔 앞에서 나는 이번 달 신용카드 결제 내역을 떠올렸다. 브랜딩이 가치를 만든다는 만초니의 예언은,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NFT·스페셜 에디션 스니커즈 등을 통해 21세기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Ⅳ. 감정의 층위 ― 불쾌, 호기심, 부끄러움, 그리고 슬픔
- 똥을 미술관에?’라는 원초적 거부감. 우리는 사회적으로 배설물을 숨기고 거리를 둔다.
- 밀봉된 호기심 박스. ‘슈뢰딩거의 똥’ 상태가 지속될수록 작품은 살아 있다.
- “비웃었지만 사실 나도 그 값을 치르고 들여다보고 있다.” 예술 시장의 희소성/브랜딩 구조를 소비자로서 몸소 수행하는 나를 발견한다.
- 만초니는 29세에 요절했다. 짧은 생을 던져 ‘작가=브랜드’라는 통렬한 비명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뒷맛처럼 쓰다.
이 서늘한 감정 파동 끝에 남은 문장은 단순했다. “예술은 무엇으로 성립되는가?”
Ⅴ. ‘열지 말라’는 최후의 계약
만초니의 유언 아닌 유언은 “캔을 열어보면 예술은 사라진다”였다. 갤러리 도슨트는 실제로 2019년에 가스 팽창으로 터져 버린 캔의 사례를 들려줬다. 폭발한 순간 남은 건 악취 섞인 가스와 찌그러진 깡통뿐—“그건 그냥 폐기물”이었다고.
나는 그 이야기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열면 가치가 사라진다’는 규칙이야말로, 예술과 자본을 동시에 건드리는 만초니의 최후 통제 장치니까. 고전 회화나 대형 조각처럼 ‘실물’에서 감동을 얻는 것과 달리, 여기서는 밀실 추리게임 같은 불가시성 자체가 감상의 본질이다.
Ⅵ. 개인적 결론 ― 내가 기꺼이 사겠다?
전시숍에 복제 모형 키링이 놓여 있었다. 가격은 45유로. 손에 들었다 놓기를 세 번 반복했다. 웃기는 건, 진짜 내용물 여부와 상관없이 작은 모형조차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나는 똥도 기념품으로 살 수 있는 소비자구나” 하는 자각에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제는 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 메모 앱을 열어 이렇게 적었다.
“Merda d’artista: 예술은 개봉 전, 신념으로만 존재한다.
나는 오늘 ‘열지 않은 믿음’을 보러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어딘가 낯설었다. 방금까지 캔을 통해 예술·시장·신체를 고민하던 내가, 일상으로 돌아오자마자 할인 앱을 열어 쿠폰을 찾고 있었다. 만초니의 캔이 아직도 뇌 뒤편에서 작은 금속성 딸깍 소리를 낸다. “당신은 무엇을 열고, 무엇을 믿으며, 무엇에 값을 치르는가?”—그 질문은 쉽사리 밀봉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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