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전시되어있는 백남준의 두 작
백남준 Nam June Paik (1932 – 2006)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남준은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독일·미국을 거치며 플럭서스(Fluxus) 운동과 실험음악, 전자매체를 결합한 선구적 작업을 펼쳤다. TV 수상기·네온·로봇·위성방송까지 동원해 “미디어는 동시대의 붓”이라는 명제를 실천했고, 1990년대에는 ‘Electronic Superhighway’라는 개념으로 오늘날 스트리밍-네트워크 시대를 예견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 상설 설치
《호랑이는 살아있다 – 첼로》 (2000)
높이 5.67 m | 비디오 설치·28대 CRT 모니터·네온
서양 현악기 ‘첼로’를 본뜬 수직 구조다. 둥근 몸통 대신 네 겹의 CRT 화면이 붉은-보랏빛 오로라 같은 영상을 교차 송출한다. 목(넥) 부분에는 작은 모니터들이 음표처럼 이어지며, 헤드스톡을 둘러싼 청색 네온이 전통 현악기의 장식을 연상시킨다. 제목 속 “호랑이”는 한국인의 기상과 새 천년의 생명력을 상징하며, 서양 악기 위에 ‘호랑이 기운’을 입혀 동-서양 문화의 공존을 선언한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 월금(月琴)》 (2000)
높이 5.71 m | 비디오 설치·30대 CRT 모니터·네온
원형 공명이(몸통)를 지닌 한국 전통 현악기 ‘월금’을 모티프로 삼았다. 원판 둘레에 띠처럼 배치된 모니터들은 청록색 수중 영상과 붉은 글리치 이미지를 번갈아 보여 주며, 중앙 4면 스크린은 ‘심장부’처럼 맥박을 튀긴다. 위쪽으로 뻗은 네크-헤드에는 첼로 작품과 동일한 청색 네온 프레임을 둘러 ‘한 몸 두 얼굴’의 쌍두 구조를 이룬다.
두 작품은 2000년 1월 1일 임진각 새천년 기념 프로젝트 〈DMZ 2000: Tiger Lives〉에 처음 등장했으며, 같은 해 세종문화회관에 기증되어 지금까지 로비를 지키고 있다. 첼로(서양)와 월금(동양)의 형상은 냉전 이후 한국 사회가 꿈꾸는 문화적 융합과 평화를 상징한다.
CRT가 멈추면 작품도 멈출까?
세종문화회관 ‘호랑이는 살아있다’ 시리즈를 기준으로 본 소멸 타임라인과 보존 전략
백남준 설치 안의 브라운관(CRT) TV는 2000년 제작 당시 이미 가정용 모델(대개 1990~1999년형)을 개조해 쓴 것입니다. 제조가 중단된 지 20 년이 넘었으므로 “추가 생산”은 불가능하고, 세계 주요 미디어아트 보존기관도 스페어(도너) 세트를 확보해 ‘교체→수리→재활용’ 순환으로 유지하고 있다. 즉, 소멸되는 시간이 있는 작품으로써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마지막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감상 포인트 중 하나일 수 있다.
감상 포인트
다채널 영상: 각각의 CRT가 서로 다른 클립을 재생하며 ‘디지털 호랑이’가 화면 사이를 질주하듯 이어진다.
네온 라인: 악기의 윤곽을 둘러싼 푸른 빛은 전통 목제 악기의 장식을 전자적 오라로 치환해, 첨단과 민속의 대비를 강조한다.
쌍수(雙手) 구조: 두 설치가 마주 보도록 배치돼 로비 전체를 거대한 ‘전자 국악기’ 무대로 전환한다. 관객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시점을 바꾸면 영상과 구조가 계속 재조합된다.
호랑이 모티프: 스크린에 삽입된 백남준 퍼포먼스·민화·다큐 클립 속 호랑이는 민족적 기억과 미래 낙관을 중첩시키는 메타포이다.
이 두 작품은 백남준이 꿈꿨던 “기술과 인간,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전자 굿판”의 축소판이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나칠 때면 잠시 발걸음을 늦춰, CRT 화면 속 흐르는 ‘호랑이의 숨결’이 오늘의 디지털 신경망과 어떻게 공명하는지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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