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함메르쇠이의 실내화 6점 — 고요한 방에 오래 머무는 이유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실내화는 창과 문, 낡은 가구와 빛으로 시선을 붙든다. 사람이 없는 방에도, 등을 돌린 인물이 앉은 방에도 각기 다른 정적이 흐른다. 여섯 작품을 나란히 놓고 그 고요함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살펴본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 1864–1916)는 자신이 살던 집을 작업실이자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방을 거듭 그리는 일은 같은 풍경을 복제하는 작업과 달랐다. 시점이 조금만 움직여도 가구 사이의 간격, 문이 열린 각도, 벽에 닿는 빛의 면적이 달라진다.

1. 탁자와 의자 사이, 어두운 방의 깊이

함메르쇠이의 탁자와 의자가 있는 다락방. 청회색 벽 아래 어두운 의자와 흰 천이 덮인 탁자가 놓이고 왼쪽 위로 비스듬한 천장 선이 내려온다

빌헬름 함메르쇠이 · 〈탁자와 의자가 있는 다락방〉
Loftværelse med bord og stol, 1883–1885
캔버스에 유채 · 58 × 61cm · 덴마크 국립미술관(SMK), DEP1249
이미지: Public Domain Mark 1.0 · 소장 미술관 원문

1883–1885년에 그린 〈탁자와 의자가 있는 다락방〉에서는 화면의 절반 가까이를 짙은 가구와 그림자가 차지한다. 왼쪽 위에서 내려오는 비스듬한 선은 천장의 형태를 드러내고, 청회색 벽은 오른쪽으로 넓어진다. 가구가 가까이 놓인 탓에 방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아 보인다.

그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탁자를 덮은 흰 천이다. 천은 평평하게 펼쳐졌다가 아래로 길게 내려오며 굽은 모서리를 만든다. 주변 가구의 윤곽이 벽과 섞이는 동안에도 이 밝은 면은 비교적 분명하다. 방의 깊이를 가늠하는 기준이 천의 앞면과 바닥 사이에 생긴다.

바닥에는 갈색과 회색이 섞여 있고, 화면 오른쪽 아래로 갈수록 그 차이가 희미해진다. 물건마다 단단한 외곽선을 두르는 대신 밝고 어두운 덩어리가 서로 맞닿는다. 탁자의 다리나 의자의 구조를 곧바로 알아맞히려 하기보다, 어느 경계가 선명하고 어느 부분이 흐려지는지 따라가면 좋다.

이 작품을 뒤에 나오는 밝은 스트란게이드의 방과 비교하면 색의 양보다 밝기의 배치가 중요해진다. 다락방의 흰 천은 어둠 속에서 시선을 모으고, 훗날의 창문과 하얀 문은 넓은 벽면을 나눈다. 제한된 색 안에서도 밝은 면의 크기와 위치만으로 공간의 인상은 크게 달라진다.

흰 천을 손으로 가리듯 마음속에서 잠시 지워보면 어떨까. 방의 중심이 사라지고 짙은 가구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다시 천을 떠올리면 가구 사이에 작지만 분명한 거리가 생긴다. 한 사물이 장면을 차지하는 방식은 물건의 개수보다 그 주변을 어떻게 보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2. 검은 난로와 열린 문이 만드는 두 방향

함메르쇠이의 오래된 난로가 있는 실내. 왼쪽의 높은 검은 난로와 오른쪽 열린 문, 문 너머의 밝은 흰 문이 회색 벽과 갈색 바닥 사이에 놓인다

빌헬름 함메르쇠이 · 〈오래된 난로가 있는 실내〉
Interiør. Den gamle bilæggerovn. Albertines Lyst, Lyngby, 1888
캔버스에 유채 · 61 × 51cm · 덴마크 국립미술관(SMK), KMS7246
이미지: Public Domain Mark 1.0 · 소장 미술관 원문

1888년의 〈오래된 난로가 있는 실내〉는 왼쪽의 검은 난로와 오른쪽 문으로 나뉜다. 난로는 아래쪽이 묵직하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며, 둥글게 튀어나온 부분들이 층을 이룬다. 오른쪽에서는 열린 문짝이 비스듬하게 서 있고 그 너머로 또 하나의 밝은 문이 보인다.

난로가 있는 왼쪽은 색도 어둡고 물건의 형태도 복잡하다. 반대로 오른쪽 문 주변에는 밝은 벽과 바닥이 이어진다. 시선은 난로의 검은 표면에 걸렸다가 문 안쪽으로 옮겨간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물건과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을 듯한 공간이 한 화면 안에서 나란히 놓인 셈이다.

문이 열렸다고 해서 바깥 풍경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앞방에서 다음 방으로, 다시 닫힌 문으로 이어지는 실내의 구조가 보인다. 그래서 열린 문을 자유나 탈출의 상징으로 곧바로 읽기보다는, 실제로 무엇이 더 보이고 어디에서 시선이 멈추는지 확인하게 된다.

이 그림에서 벽의 회색도 한 가지가 아니다. 난로 옆은 차분한 회색이고 문 위쪽에는 누런 기운이 돌며, 밝은 문틀 주변은 흰색에 가깝다. 바닥 역시 검은 부분과 갈색 부분이 붓질을 따라 섞인다. 색 이름을 하나 붙이고 지나치면 놓치기 쉬운 차이가 물건 사이의 공기를 만든다.

난로를 먼저 본 뒤 문을 보고, 반대로 문에서 시작해 난로로 돌아와 보자. 앞의 순서에서는 방 안의 무게가, 뒤의 순서에서는 안쪽으로 이어지는 거리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작품이 고요하게 느껴지는 동안에도 보는 눈은 계속 이동하고 있다. 정적 안에 작은 움직임이 남는 이유다.

3. 햇빛이 들어오면, 인물보다 방이 먼저 보인다

함메르쇠이의 스트란게이드의 방, 바닥에 드는 햇빛. 왼쪽 탁자에 등을 보인 여성이 앉고 흰 커튼의 창과 오른쪽 닫힌 문 아래 바닥에 격자 모양 햇빛이 비친다

빌헬름 함메르쇠이 · 〈스트란게이드의 방, 바닥에 드는 햇빛〉
Stue i Strandgade med solskin på gulvet, 1901
캔버스에 유채 · 46.5 × 52cm · 덴마크 국립미술관(SMK), KMS3696
이미지: Public Domain Mark 1.0 · 소장 미술관 원문

〈스트란게이드의 방, 바닥에 드는 햇빛〉은 1901년 작품이다. 덴마크 국립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함메르쇠이는 1898년부터 1908년까지 코펜하겐의 스트란게이드 30번지에서 살았다. 이 집의 실내는 여러 작품에 등장하며, 집은 생활 공간이면서 빛과 구도를 살피는 작업 장소이기도 했다.

이 방에는 사람이 있다. 왼쪽의 여성은 의자에 앉아 등을 보이고, 앞에는 붉은 갈색의 작은 탁자가 놓여 있다. 얼굴과 손의 자세가 자세히 드러나지 않아 무엇을 하는지 분명하게 말하기 어렵다. 대신 어두운 옷과 의자의 선이 밝은 벽 앞에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중앙 창문에는 얇고 흰 커튼이 걸려 있다. 커튼의 부드러운 주름과 창틀의 곧은 선이 겹치고, 그 아래 바닥에는 작은 사각형들이 밝게 내려앉는다. 오른쪽 문은 닫혀 있으며 왼쪽 벽에는 작은 액자 두 개가 나란히 걸렸다. 사각형의 크기와 간격이 화면 곳곳에서 달라진다.

인물이 있다고 해서 시선이 그 사람에게만 모이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얀 커튼과 문, 바닥의 햇빛이 차례로 눈을 끈다. 여성의 어두운 등은 그 밝은 면들과 함께 방의 균형을 이룬다. 인물의 사연을 상상하기 전에 몸의 크기가 주변 공간과 어떤 비율을 이루는지 볼 수 있다.

바닥의 빛을 먼저 보고 창으로 올라가면 커튼이 빛을 거르는 재료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인물에서 시작하면 탁자와 의자, 벽의 작은 액자들이 생활의 흔적으로 보인다. 같은 화면에서도 출발점을 바꾸는 것만으로 감상의 순서가 달라진다. 고요한 방 안에 여럿의 시선 경로가 숨어 있다.

4. 달빛 아래에서는 창틀과 바닥이 말을 건다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달빛, 스트란게이드 30번지. 회갈색 빈방 중앙의 창문과 오른쪽 닫힌 문, 바닥에 내려앉은 창틀 모양의 빛

빌헬름 함메르쇠이 · 〈달빛, 스트란게이드 30번지〉
Moonlight, Strandgade 30, 1900–1906
캔버스에 유채 · 41 × 51.1cm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2.203
이미지: Public Domain / CC0 · 소장 미술관 원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의 〈달빛, 스트란게이드 30번지〉는 1900–190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미술관은 작가가 이 아파트의 응접실을 아침과 낮, 밤에 그렸다고 설명한다. 낮의 그림에서 보았던 창과 문의 배열을 떠올리면, 시간의 변화가 방을 어떻게 새롭게 만드는지 비교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인물도 탁자도 커튼도 없다. 창틀과 벽의 장식선, 오른쪽 닫힌 문이 화면을 나눈다. 낮의 흰 벽은 회갈색과 보랏빛이 감도는 면으로 바뀌고, 바닥의 작은 격자만 주변보다 밝게 보인다. 빛은 방 전체를 환하게 밝히기보다 몇 군데의 모서리와 표면을 골라 드러낸다.

특히 창문과 그 아래 바닥의 관계를 살펴볼 만하다. 세로로 선 창의 사각형이 바닥에서는 비스듬히 누운 사각형으로 이어진다. 벽 위에 있던 선이 바닥의 깊이로 바뀌는 것이다. 가구가 많지 않아서 이 단순한 변환이 눈에 잘 들어오고, 방 안의 거리를 짐작하게 한다.

낮 그림의 커튼은 부드러운 곡선을 보태지만 이 그림에서는 나무 장식의 곧은 선이 더 분명하다. 같은 집의 방을 살펴보는 즐거움은 이런 차이에 있다. 어느 장면이 더 쓸쓸한지부터 결정하기보다,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더 잘 보이게 되었는지 찾아보면 감정에 붙일 근거도 구체적이 된다.

이 글에서는 그 어두운 여백을 잠시 판단을 미뤄도 되는 시간으로 읽고 싶다. 닫힌 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가 방을 떠났는지 답을 붙이지 않아도 그림은 충분히 남는다. 바닥의 빛과 벽의 작은 색 차이를 따라가다 보면 빈방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말의 양도 조금씩 줄어든다.

5. 촛불 두 개가 밝히는 타원형의 장면

함메르쇠이의 실내, 인공의 빛. 어두운 타원형 화면 안에 둥근 탁자와 여러 방향의 빈 의자가 놓이고 중앙의 촛불 두 개가 작게 빛난다

빌헬름 함메르쇠이 · 〈실내, 인공의 빛〉
Interiør. Kunstigt lys, 1909
캔버스에 유채 · 60 × 82.8cm · 덴마크 국립미술관(SMK), KMS8677
이미지: Public Domain Mark 1.0 · 소장 미술관 원문

1909년의 〈실내, 인공의 빛〉에서는 창문 대신 촛불 두 개가 시선을 잡는다. 둥근 탁자 위에서 작은 불꽃이 나란히 서고 주변에는 빈 의자들이 놓여 있다. 갈색과 검은색이 넓게 퍼진 화면에서 불꽃과 탁자 윗면만 조금 밝다. 앞의 달빛 그림보다도 물건의 윤곽을 구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중앙의 의자 등받이는 보는 쪽을 향해 넓게 놓이고, 양옆 의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 누가 어느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추측할 수는 있지만 그림은 그 사연을 확인해주지 않는다. 의자들이 지금 만드는 각도와 탁자까지의 거리가 먼저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다.

화면의 위쪽과 양옆을 보면 타원형의 경계가 장면을 감싸고 있다. 직사각형 창문과 문틀이 많던 앞의 그림들과 다른 모양이다. 둥근 탁자에 타원형 테두리가 더해져 시선이 바깥으로 빠져나가기보다 안쪽을 맴도는 듯하다. 이 감각은 선의 형태에서 출발한 하나의 해석으로 읽을 수 있다.

두 불꽃을 기준으로 밝은 면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살펴보자. 탁자의 윗면은 드러나지만 의자의 아래쪽과 구석의 물건은 어둠에 잠긴다. 햇빛이 창틀의 모양을 바닥에 옮겼다면 촛불은 가까운 물건 몇 개를 둘러 밝힌다. 빛의 출처가 달라지자 방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이 작품은 이미지 자체가 매우 어둡다. 그 어둠을 한 번에 해독하려 하기보다 불꽃에서 탁자 가장자리로, 다시 의자 등받이로 천천히 눈을 옮겨보면 좋다. 모든 사물을 또렷하게 보지 못하는 상태도 감상의 일부가 된다. 알아볼 수 있는 부분과 남겨진 부분 사이에서 방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6. 캔버스의 뒷면에서 발견하는 화가의 자리

함메르쇠이의 화가의 이젤이 있는 실내. 회색 벽 앞에 캔버스의 뒷면과 나무 이젤이 서 있고 열린 문 너머 탁자 위에 밝은 그릇이 놓여 있다

빌헬름 함메르쇠이 · 〈화가의 이젤이 있는 실내〉
Interiør med kunstnerens staffeli, 1910
캔버스에 유채 · 84 × 69cm · 덴마크 국립미술관(SMK), KMS7444
이미지: Public Domain Mark 1.0 · 소장 미술관 원문

1910년의 〈화가의 이젤이 있는 실내〉에는 그림을 만드는 도구가 등장한다. 앞쪽 이젤에는 캔버스의 뒷면이 보이고, 위쪽 벽에는 테두리가 밝은 액자가 걸려 있다. 오른쪽으로 열린 문 너머에는 작은 탁자와 밝은 그릇이 놓였다. 두 공간을 가르는 문틀이 화면의 세로 방향을 길게 잡아준다.

이젤의 다리는 비스듬히 뻗어 단정한 문틀의 수직선과 만난다. 캔버스의 어두운 사각형은 벽 위 액자의 가로 형태와 호응하고, 안쪽 방의 그릇은 작은 곡선을 보탠다. 비슷한 사각형이 많아도 모두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크기와 방향, 밝기의 차이를 보며 앞뒤의 거리를 읽을 수 있다.

완성된 그림을 보여줄 듯한 자리에서 캔버스의 등을 마주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무엇을 그리고 있었는지는 가려져 있지만 화가가 일하는 장소와 도구는 남아 있다. 사람이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노동의 자리를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는 부재와 존재가 한 공간 안에서 함께 느껴진다.

여섯 작품을 다시 넘겨보면 방을 고요하게 만드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다. 다락방의 흰 천은 어둠을 나누고, 검은 난로는 밝은 문을 강조한다. 햇빛은 인물과 공간을 함께 드러내며, 달빛은 창틀의 선을 바닥에 옮긴다. 촛불은 보이는 범위를 좁히고 이젤은 보이지 않는 작업을 생각하게 한다.

마케롱 아트의 〈빛 사이의 고독 ― 에드워드 호퍼, 멈춘 도시를 바라보다〉에서는 도시의 빛과 여백을 다뤘다. 그 시선을 함메르쇠이의 방으로 옮기면 인물의 표정 없이도 공간이 감정을 만드는 방식을 살펴보게 된다. 창과 문, 사물 사이의 거리가 감상의 출발점이 된다.

그림 한 점을 골라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곳까지 눈을 옮겨보자. 다음에는 문이 열린 각도나 가구 다리의 방향을 따라가면 좋다. 마지막으로 물건 하나를 마음속에서 빼보고 무엇이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고요한 방에 오래 머무는 이유는 멈춘 화면 안의 작은 차이가 계속 발견되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제작연도·재료·크기는 각 소장 미술관의 공개 기록을 확인했다. 한국어 작품명은 원제를 옮긴 이름이며, 화면이 일으키는 감정과 의미에 관한 문장은 마케롱 아트의 감상과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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