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허쉬만 리슨 전시 《나의 [나]들》 — AI 시대, 화면 속 나는 누구일까


AI 프로필 사진을 고를 때 우리는 어떤 얼굴을 남길지 결정한다. 평소의 표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가깝다는 이유로 한 장을 고르기도 한다. 사진을 바꾼 뒤에는 이름과 소개 문구를 손보고, 그 얼굴에 어울리는 게시물을 올린다. 화면 속 모습이 조금씩 구체적인 인물처럼 자라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그 인물은 얼마나 나일까.

서울시립미술관의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은 이런 질문을 예술의 긴 시간 속에서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미국의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린 허쉬만 리슨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으로, 2026년 10월 21일부터 2027년 2월 21일까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다. 200여 점으로 60여 년의 작업을 살펴볼 수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의 기본 내용은 서울시립미술관 공식 안내에서 확인했다.

보라색 목도리를 두른 미디어아티스트 린 허쉬만 리슨의 초상

린 허쉬만 리슨. 사진: Lisa K Blatt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Commons 제공본은 이전 편집자 NotARabbit가 크롭·색보정한 이미지이며, 이 글에서는 추가 편집하지 않았습니다. 전시 현장이나 작품을 촬영한 사진이 아닙니다.

다른 ‘나’를 만든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작가는 1973년 가상의 인물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를 만들었다. 외모와 행동을 설정하고 은행 계좌와 운전면허,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통해 그 인물이 사회 안에서 관계를 맺게 했다. 공식 작품 설명을 읽으면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 얼굴 하나를 완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다른 이름을 갖는 일은 그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응답하고, 다음 만남까지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온라인 프로필도 비슷한 질문을 남긴다. 사진 한 장에 이름과 취향, 게시물, 타인의 반응이 붙으면서 하나의 인물이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가볍게 정한 분위기였는데, 그 모습이 호응을 얻으면 다음에도 비슷하게 보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자유롭게 선택한 이미지에 스스로 맞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유지의 부담까지 생각할 때 온라인 정체성의 문제가 더 또렷해진다고 느낀다.

다른 모습을 시도하는 경험에는 분명 가능성이 있다. 익숙한 관계에서 꺼내기 어려웠던 관심사를 드러내고, 아직 말로 설명하지 못한 자신을 연습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모습으로 오래 머물고 싶은지, 어느 순간 벗어나고 싶은지를 스스로 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다. 프로필을 꾸밀 자유에는 방향을 바꿀 자유도 함께 있어야 한다.

앞서 쓴 〈가면을 쓴 거울 — AI가 재구성한 얼굴과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에서 얼굴의 복제와 신뢰를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 얼굴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되는지까지 질문을 넓혀보고 싶다. 이미지의 진위를 살피는 일과, 이미지 뒤에 있는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일은 나란히 필요하다.

1973년 가상 인물, 1998~2002년 웹 챗봇, 2026~2027년 서울 전시를 잇는 정체성 질문의 타임라인

가상의 인물에서 웹 챗봇까지, ‘나’를 둘러싼 질문의 흐름.
마케롱 아트 편집도표, 작품 이미지 아님. 연도는 공식 작품·전시 정보를 참고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

〈에이전트 루비〉(1998–2002)는 사람과 대화하는 웹 기반 AI 캐릭터다.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소장품 정보에서도 제작 시기와 웹 프로젝트라는 형식을 확인할 수 있다. 오래된 챗봇을 오늘의 생성형 AI와 연결해 읽으면 기술의 성능만큼이나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의 태도가 궁금해진다.

우리는 기계에 질문하면서 정확한 답을 바라기도 하고, 누군가 내 말을 받아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얼굴이 보이고 답장이 돌아오면 그 뒤에 어떤 성격이 있을지 상상한다. 짧은 반응을 다정함으로 받아들이고, 엉뚱한 답을 기분의 변화처럼 읽을 수도 있다. 화면에 인물이 있다는 설정은 대화의 내용을 해석하는 방식에도 관여한다.

나는 이 작품을 소개하며 대화가 나를 이해한다고 느끼는 순간을 생각하게 된다. 그 느낌을 만드는 데 나의 기대는 얼마나 참여하고 있을까. 지친 날에는 같은 문장도 위로처럼 읽힐 수 있고, 조급한 날에는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대화하는 기계를 살펴보는 동안, 우리가 관계에서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함께 드러난다.

이런 감정은 쉽게 비웃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친밀하게 느끼는 순간에도 내가 어떤 정보를 건네고 있으며, 그 관계를 멈출 수 있는지 생각할 틈은 필요하다. 작가가 작업의 출발을 설명하는 SFMOMA 공식 인터뷰 영상도 함께 참고할 만하다. 이번 서울 전시의 현장 영상과는 별개의 작가 인터뷰다.

바라보는 순간, 나도 이미지가 된다

공식 전시 소개에 등장하는 〈틸리, 텔레로보틱 인형〉과 〈사이버로베르타〉는 웹캠을 통해 시선과 기술의 관계를 다룬다. 여기서 내가 오래 붙들고 싶은 것은 보는 행위의 방향이다. 화면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관찰자의 자리에 선다. 그런데 그 장치가 나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같은 장면의 의미가 달라진다.

셀카를 찍을 때도 작은 방향 전환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내 모습을 확인하지만, 곧 타인이 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표정을 고른다. 내가 보는 얼굴과 남에게 보이고 싶은 얼굴이 한 화면에서 겹친다. 이 겹침이 반복될 때 나는 내 기분을 살피는 중인지, 누군가의 평가를 미리 연습하는 중인지 돌아보게 된다.

누가 카메라를 켜고 끄는지, 화면의 어느 부분을 보여주는지, 관찰된 장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이미지의 인상만큼 중요한 조건이다. 같은 얼굴도 촬영하는 쪽과 설명하는 문장이 바뀌면 다른 의미로 읽힌다. 예술을 소개하는 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작가의 얼굴을 싣는 지금, 사진의 출처와 촬영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뀔 수 있는 얼굴과 바꾸기 어려운 기록

이미지를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는 감각은 매력적이다. 오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버전을 만들고, 오래된 프로필을 새 사진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나를 바라본 사람의 기억이나 이미 퍼진 이미지까지 같은 속도로 수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면 안의 편집 가능성과 관계 속의 변화 가능성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장난으로 고른 과장된 캐릭터를 오래 사용했다고 해보자. 이후 생각이 달라져도 사람들은 익숙한 모습을 계속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과거의 사진이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은데도, 누군가 그 한 장으로 나를 단정할 수 있다. 이때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완벽한 대표 이미지보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기술이 허락하는 변신을 이야기할 때, 사람이 변했다는 설명을 듣는 일까지 함께 생각하고 싶다. 다른 이름이나 얼굴을 선택한 이유를 단순한 속임수로 재단하기 전에 그 선택의 맥락을 살피는 것이다. 동시에 타인의 얼굴을 빌리거나 합성할 때는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 인물로 읽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작가가 가상의 인물을 만든 작업과 오늘의 AI 이미지 생산 사이에는 도구와 환경의 차이가 있다. 둘을 같은 것으로 묶기보다, 각각의 상황에서 누가 선택하고 누구에게 결과가 돌아가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좋겠다. ‘진짜 나’를 한 번에 찾아내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 다른 모습이 생겨난 조건을 살피는 읽기다.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 에이전트 루비, 웹캠 인형을 읽는 세 가지 질문을 정리한 편집 카드

세 작업을 읽기 위한 질문: 모습을 만들기, 대화하기, 바라보기.
마케롱 아트 편집도표, 작품 이미지 아님. 질문은 이 글의 해석으로 정리했습니다.

예술은 새 도구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고지식한 예술에 대한 비판과 AI 시대의 새로운 판〉에서 생각했던 예술과 기술의 관계도 이어진다. 새 도구를 받아들이는 일에는 그 도구가 만드는 관계를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지를 쉽게 만드는 능력과 그 이미지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해석하는 능력은 함께 길러야 한다.

예술가가 기술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의미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누구의 경험을 다루는지, 관객에게 어떤 선택을 맡기는지, 그 선택이 끝난 뒤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결과물의 매끈함을 잠시 지나쳐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때, 기술을 쓰는 태도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알아보며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점도 질문의 지속성이다. 새로운 장치가 등장하면 우리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느끼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오랫동안 이어진다. 오래된 작업을 오늘의 언어로 읽는 일은 그 익숙한 마음이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모양을 갖게 되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된다.

전시를 보게 된다면 모든 작품의 의미를 한 번에 정리하려고 서두르지 않아도 좋겠다. 어느 장면에서 내가 편안하거나 불편했는지, 응답하고 싶었는지, 거리를 두고 싶었는지를 짧게 적어보는 방법도 있다. 공식 설명에서 확인한 사실과 내 해석을 나란히 남기면, 나중에 생각이 달라졌을 때 그 변화 자체를 읽을 수 있다. 그런 기록이 결국 나만의 예술 이야기가 된다고 믿는다.

전시 관람 정보와 함께 생각할 질문

  • 전시: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 기간: 2026.10.21–2027.02.21
  •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3층 전시실 및 3층 크리스탈 갤러리
  • 요금: 무료
  • 시간: 화–목 10:00–20:00, 금 10:00–21:00. 11–2월 토·일·공휴일 10:00–18:00
  • 입장: 종료 1시간 전까지. 매주 월요일·1월 1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정상 개관

지금 이 장면에서 모습을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기록을 보관하는 쪽은 어디인지, 다른 모습으로 바꿀 자유는 누구에게 있는지. 화면 속 얼굴을 바라볼 때 이 세 질문을 곁에 놓아두고 싶다. 나를 표현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

2026년 11월 3일 공식 안내 확인. 이 글은 현장 관람 후기가 아닌,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쓴 전시 소개와 해석입니다. 작품의 주요 사실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안내와 공식 보도자료, SFMOMA 소장품 정보를 참고했습니다. 운영 변경 여부와 작품 이미지는 전시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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