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롱 르동 작품 감상 — 검은 판화에서 꽃과 하늘의 색채로
오딜롱 르동의 그림에서는 눈을 감은 얼굴과 낯선 존재들, 화려한 꽃과 신화 속 전차가 한 작가의 세계로 이어집니다. 흑백 석판화부터 파스텔과 유화까지 여섯 작품의 색과 표면을 따라가며, 익숙한 사물이 어떻게 조금 낯설고 풍성한 이미지가 되는지 살펴봅니다.
프랑스 화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은 오랫동안 흑백의 드로잉과 판화를 작업했고, 1890년대 이후에는 파스텔과 유화에서도 색채의 가능성을 펼쳤습니다. 밝은 꽃 그림만 떠올렸던 분이라면 앞의 두 판화가 의외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기의 작품을 함께 보면 색이 달라져도 남아 있는 관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을 감은 얼굴, 종이 위에 남은 작은 흔적

Eyes Closed, 1890
석판화 · 화면 21.7 × 18.4cm · 종이 35.6 × 27.5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5.80
이미지 제공: The Met Open Access · Public Domain / CC0 · 공식 작품 정보
1890년의 〈눈을 감고〉에는 얼굴과 목이 크게 놓여 있습니다. 인물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채 약간 고개를 기울입니다. 머리카락은 둥근 테두리처럼 머리를 감싸고, 얼굴 오른쪽의 짙은 부분은 목으로 이어집니다. 눈썹과 콧날, 입술 주변을 제외하면 경계가 부드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연필로 종이에 그린 얼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소장 기록에 적힌 재료는 석판화입니다. 메트의 석판화 제작 설명에 따르면 평평한 돌이나 준비된 금속판에 지방성 재료로 이미지를 만들고, 물과 기름 성분의 성질을 이용해 잉크를 종이에 옮깁니다. 이 작품에서도 가는 선과 알갱이 같은 흔적이 함께 보입니다.
피부의 밝은 부분은 종이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색이고, 머리카락과 목의 옆면에는 회색이 여러 겹으로 모입니다. 콧등에서 뺨으로 옮겨가면 밝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검은 선 하나로 얼굴을 닫아두지 않아, 인물이 바탕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눈을 감은 표정을 곧바로 평온함이나 슬픔으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눈의 방향을 확인할 수 없으니 보는 쪽은 입술의 힘, 고개의 각도, 얼굴 주변의 빈 공간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이 얼굴의 조용함은 그런 작은 요소들이 함께 만드는 감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 아래쪽에 남은 종이의 여백도 작품을 보는 속도에 영향을 줍니다. 얼굴을 둘러싼 공간이 넉넉해서 시선이 바깥으로 잠시 나갔다가 다시 닫힌 눈으로 돌아옵니다. 화면을 꽉 채운 인물 사진과 나란히 떠올려보면, 눈을 마주치지 않는 얼굴이 오히려 오래 남는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흰옷을 입은 인물 주위로 검정이 깊어집니다

Haunting, 1893–1894
석판화, 다섯 번째이자 최종 상태 · 화면 36.1 × 22.8cm · 종이 47.7 × 34.7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55.501
이미지 제공: The Met Open Access · Public Domain / CC0 · 공식 작품 정보
〈환영〉에서는 검정의 양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긴 흰옷을 입은 인물은 왼쪽을 향하고 있고, 주변에는 몸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얼굴과 길게 휘어진 형상이 떠 있습니다. 발이 닿는 바닥은 희미합니다.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가는 장면인지 공간의 설명이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메트는 이 판화가 처음에는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한 장면에서 출발했으며, 여러 차례 변형을 거쳐 현재의 이미지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지금 보는 것은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상태입니다. 미술관에 따르면 바탕을 이처럼 짙은 검정으로 만든 것은 최종 상태에서였습니다.
이 정보를 알고 나면 검정은 인물 뒤를 채운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흰옷의 세로 방향은 분명한 반면, 얼굴 주위의 공간은 깊이와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작은 얼굴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단정하기도 힘듭니다. 밝은 인물 하나를 둘러싸고 낯선 거리가 생깁니다.
〈눈을 감고〉에서는 얼굴과 바탕이 비슷한 회색으로 이어졌지만, 이 작품에서는 밝은 인물과 검은 공간이 뚜렷하게 갈립니다. 같은 흑백 판화라도 종이 위에 남기는 밝은 면의 넓이가 달라지자 인상이 크게 바뀝니다. 검정의 짙음과 여백의 위치가 색을 대신해 장면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이한 형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두 알아맞히려 하면 화면을 빨리 지나치기 쉽습니다. 길게 내려오는 옷자락의 결, 인물의 옆얼굴, 가장자리에서 휘어지는 선을 차례로 보면 낯선 형상도 관찰할 수 있는 모양이 됩니다. 의미를 정하기 전에 생김새를 즐기는 길이 열리는 셈입니다.
파스텔 꽃다발에서는 색의 알갱이가 보입니다

Bouquet of Flowers, 약 1900–1905
종이에 파스텔 · 80.3 × 64.1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56.50
이미지 제공: The Met Open Access · Public Domain / CC0 · 공식 작품 정보
〈꽃다발〉로 넘어오면 붉은색과 푸른색, 보라색과 노란색이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청색 계열의 꽃병 위로 꽃과 잎이 부채처럼 퍼지고, 그 주위에는 작은 나비들이 흩어집니다. 세밀하게 선을 따라 그린 꽃도 있지만, 짧은 색의 흔적이 모여 꽃송이가 된 부분도 많습니다.
이 작품은 유화가 아니라 종이에 그린 파스텔입니다. 메트의 파스텔 해설은 안료 가루와 소량의 결합제로 만든 재료가 종이 표면에 붙는 방식을 설명하며, 바로 이 르동 작품의 다양한 획도 예로 듭니다. 꽃잎을 둘러싼 색의 입자와 넓게 문질러진 듯한 면을 함께 살펴볼 만합니다.
왼쪽의 붉은 꽃과 중앙의 짙은 보라색 꽃은 서로 다른 색으로 시선을 잡습니다. 아래쪽 꽃병에서도 청색과 보라색 사이로 노랑과 붉은 무늬가 나타납니다. 꽃병을 단순한 받침으로 두지 않아 꽃송이에서 시작된 색의 움직임이 화면 아래까지 이어집니다. 배경의 갈색은 그 색들을 받아주는 넓은 면이 됩니다.
미술관에 따르면 르동은 젊은 시절 생물학에 관심이 있었고, 고향 보르도 식물원의 아르망 클라보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작품 속 꽃병은 도예가 마리 봇킨이 1900년 무렵 만들어 선물한 것입니다. 익숙한 꽃과 실제로 소유했던 그릇이 이처럼 상상력이 큰 정물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나비와 꽃을 하나씩 구분하는 재미도 있지만, 조금 떨어져 색의 덩어리로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어느 거리에서는 빨간 꽃 한 송이가 먼저 보이고, 다른 거리에서는 푸른 꽃병과 꽃다발 전체의 무게가 눈에 들어옵니다. 가까이 볼 때와 멀리 볼 때 서로 다른 그림처럼 읽히는 부분이 생깁니다.
분홍 배경과 흰 꽃병 사이에 여백이 생깁니다

Vase of Flowers (Pink Background), 약 1906
캔버스에 유채 · 72.7 × 54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59.16.3
이미지 제공: The Met Open Access · Public Domain / CC0 · 공식 작품 정보
〈꽃병의 꽃, 분홍 배경〉에서는 꽃병도 바탕도 한층 밝아집니다. 작은 무늬가 있는 흰 꽃병은 화면 아래에 놓이고, 붉은 꽃과 노란 꽃이 그 위를 가득 채웁니다. 가운데의 초록 줄기는 꽃다발 위로 길게 올라가며, 꼭대기 부근의 푸른 꽃 한 송이가 넓은 빈 공간을 가볍게 붙잡습니다.
앞의 파스텔 꽃다발이 좌우로 풍성하게 퍼졌다면 이 작품은 아래쪽의 밀집한 꽃과 위쪽의 듬성한 줄기를 대비시킵니다. 꽃이 많은 곳과 적은 곳의 차이 덕분에 시선이 위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화면 위쪽의 여백을 잘라낸다고 상상해보면, 가느다란 줄기의 길이와 꽃병의 무게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재료는 캔버스에 유채입니다. 옅은 분홍과 노랑이 섞이는 바탕에서는 붓이 지나간 듯한 흔적과 캔버스의 결이 함께 보입니다. 붉은 꽃은 비교적 넓은 면으로 나타나고, 작은 흰 꽃은 짧게 찍힌 흔적들이 모여 있습니다. 파스텔과 유화를 나란히 보면 색뿐 아니라 색이 표면에 놓이는 방식도 감상의 대상이 됩니다.
꽃병의 가장자리와 바닥의 경계는 꽃송이의 붉은색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풍경이나 단단한 벽을 설명하지 않는 배경 때문에 꽃의 색이 공기 속으로 조금씩 번지는 듯합니다. 여기서 느껴지는 몽환적인 인상은 특별한 상징을 먼저 찾지 않아도 색의 연결과 흐린 경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두 꽃 그림을 연달아 보면 정물이라는 같은 이름 안에서도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꽃의 종류를 모두 아는 것보다 붉은 면이 어디에 모이는지, 꽃병이 얼마나 밝은지, 위쪽 공간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이 두 작품의 차이에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판도라〉에서는 꽃 사이로 몸의 선이 이어집니다

Pandora, 약 1914
캔버스에 유채 · 143.5 × 62.2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60.19.1
이미지 제공: The Met Open Access · Public Domain / CC0 · 공식 작품 정보
〈판도라〉에서는 꽃이 꽃병을 떠나 인물 주위를 둘러쌉니다. 세로로 긴 화면 중앙에 누드 인물이 서 있고,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용기를 품고 있습니다. 위쪽의 청록색 바탕에는 나뭇가지가 비스듬히 지나갑니다. 아래쪽과 양옆에서는 붉고 푸른 꽃들이 크기를 달리하며 인물의 공간을 감쌉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미술관은 그녀가 품은 상자와, 그것을 열었을 때 인간 세계에 여러 재앙이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함께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림에 재앙의 장면이 직접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지금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조용히 고개를 숙인 몸과 풍성한 꽃입니다.
몸의 윤곽은 가늘고 붉은 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배경과 인물의 색 차이가 크지 않은 부분에서는 몸이 꽃 사이의 빛과 섞이는 듯합니다. 오른쪽 아래의 커다란 붉은 꽃은 몸의 길이와 비교해 유난히 크게 보입니다. 꽃과 인물을 같은 비율로 이해하려는 눈에 작은 흔들림이 생깁니다.
앞의 정물에서 색의 덩어리로 보았던 꽃들이 여기서는 인물을 둘러싼 환경이 됩니다. 흰옷의 인물이 검은 공간에서 분리되었던 〈환영〉과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두 그림 모두 인물 주변에 낯선 세계가 놓이지만, 한쪽은 강한 명암으로 거리를 만들고 다른 쪽은 비슷한 밝기와 다채로운 색으로 경계를 느슨하게 합니다.
땅이 사라진 하늘에서 색과 선이 움직입니다

The Chariot of Apollo, 1905–1916
캔버스에 유채 · 66 × 81.3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7.29
이미지 제공: The Met Open Access · Public Domain / CC0 · 공식 작품 정보
〈아폴론의 전차〉는 앞의 〈판도라〉와 달리 가로로 펼쳐집니다. 말들은 왼쪽 위에 모여 있고 전차와 인물은 오른쪽 아래에 놓입니다. 두 무리를 잇는 가느다란 고삐가 화면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릅니다. 청록색 사이로 분홍과 연한 노랑의 구름이 퍼지고, 말발굽 아래로 땅은 보이지 않습니다.
미술관은 르동이 태양의 말과 전차라는 주제를 유화와 파스텔, 연필 등으로 서른 점 넘게 다뤘다고 설명합니다. 이 버전에서는 지면을 나타내는 단서를 생략했습니다. 말과 전차를 익숙한 도로 위에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시선은 달리는 길을 따라가기보다 색과 선이 만든 방향을 따라갑니다.
말들이 모인 곳은 비교적 밝고 조밀하며, 화면 오른쪽 위는 구름 사이로 넓게 열려 있습니다. 고삐의 선이 그 빈 곳을 건너면서 떨어진 형상들을 묶습니다. 꽃다발의 가는 줄기가 위쪽 여백을 붙잡았던 장면과 나란히 보면, 전혀 다른 주제에서도 가느다란 선 하나가 넓은 색면을 연결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여섯 작품을 잇는 재미는 흑백에서 색으로 바뀌는 과정만 따라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얼굴을 감싼 회색, 흰옷 주변의 검정, 꽃병 뒤의 분홍, 전차 아래의 구름은 모두 대상이 놓인 환경을 다르게 만듭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본 뒤에도 주변을 조금 더 바라보게 하는 힘이 남아 있습니다.
마케롱 아트의 빌 비올라 작품을 다룬 글에서는 화면과 감각의 관계를 살폈습니다. 르동의 종이와 캔버스는 움직이지 않지만, 색이 모이는 곳과 흐려지는 곳을 따라 눈이 움직입니다. 매체와 시대가 달라도 작품을 보는 경험은 이미지가 전달하는 정보의 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을 보고 기분이 환해졌다가 검은 판화의 기이한 얼굴을 다시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의 순서로 보아도 좋습니다. 르동의 작품에서는 즐거운 색과 설명하기 어려운 모양이 함께 남습니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 눈길을 끌었던 작은 꽃 한 송이, 고삐 한 줄, 감긴 눈의 각도를 다시 보는 것으로 감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케롱은 마케팅을 연구하고 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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